이 글은 위자드웍스 공식 블로그 <위자드닷컴 런칭 1주년 기념 연재>의 일환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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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나에게는 약간의 핸디캡이 있다. IT 벤처의 대표로서 개발자 출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일 년간 만난 많은 벤처기업들의 공통점은 거의 대부분 공학도 출신의 대표를 두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 분들에 비해 연배에서나 능력에서나 한참이나 부족하기 때문에 이렇다할 전문 분야를 찾기가 참 어렵지만, 그래도 지난 일 년간 특별히 공을 들였던 분야를 찾으라면 그것은 홍보나 마케팅이 아니었을까 한다.

아는 분은 아시다시피 나는 언론학도이다. 원래는 99년도 부터 생애 첫 법인을 꾸려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경영학 또는 공학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 또는 주위의 기대감이 있었지만, 적어도 학부에서만큼은 '그냥 재미있을 것 같은' 그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택한 학문이 바로 언론학이었다.

나는 초중고를 거치며 줄곧 방송부 서클에서 활동해 왔다. 대학에 와서는 다른 동기들이 그렇듯이, 투자 동아리나 벤처 동아리 등 밥벌이에 도움이 되는 동아리에 들어가야겠다 생각했는데 정작 지원서를 들고 찾아가게 되는 곳은 역시나 대학 방송국이었다. 학교 방송국에서 꽤 오래 일하며 나는 방송을 진행하거나 독립영화를 제작하는 일에 큰 흥미를 느꼈다. 부족하지만 열심히 끄적인 시나리오를 들고 무거운 장비를 이끌며 촬영에 임하던 그 순간만큼은 너무나도 행복했다. 내 가슴이 뜨겁게 타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러는 내가 언론학을 택한건 어찌보면 당연한 선택의 연장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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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에 만들었던, 지금 보면 부끄러워서 낯뜨거워지는 졸작 <SMOKING GUN> -
(잘 보면 위자드웍스 마케팅팀장 Solki님과 경영팀장 숙진님도 만날 수 있다.)

나는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고민에 빠져 있었다. 이대로 대학을 졸업해 적당한 회사에 취직해 살 것인가, 또는 (지난 6년 간 그래왔듯) 무언가 새로운 일을 도모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던 중 외국계 IT 컨설팅 회사 인턴 자리가 우연히 눈에 들어왔다. 마침 마케팅 일이었기 때문에 전공과 크게 무관하지 않았고, 오랜 시간 관심을 두어온 '업계'와 '언론'의 접점을 다룬다는 차원에서 '마케팅'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아주 흥미롭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두차례의 인터뷰를 거쳐 나의 인턴 생활이 시작되었다. 나의 첫 사수는 지금도 액센츄어 서울 오피스의 마케팅을 책임지고 있는 Niki-우린 실제로 사내에서 영어 이름을 사용했다- 부장이었다. 당시 해당 부서는 전임자들이 모두 자리를 비우게 되어 Niki 부장과 나 이렇게 둘이서 국내 직원 400여명, 세계 2위 IT 컨설팅 펌의 국내 마케팅 업무를 전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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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컨설팅 펌이 그렇듯, 액센츄어도 컨설턴트가 직접 영업을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주로 하는 일은 기자들을 상대하는 PR 업무였다. 아주 혹독하게 보도자료 패키지를 준비해야 했고 일주일에 하나씩 각종 세미나와 컨퍼런스를 준비했다. 행사가 없을 때는 없는 기사를 만들어야 했는데 그런 역할도 중간에 사람이 없으니 일단은 내가 맡아야 했다. 액센츄어 미국 본사의 보도자료를 받아 이를 번역한 후 국내 실정에 맡게 고쳐 '기사꺼리'로 만드는 일이었는데 이런 일이 떨어지면 밤 늦게까지 회사에 남아 '이렇게까지 해야하나'하는 생각까지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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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회사다보니 IT 뉴스를 클리핑하는 일이 아침의 첫 일과였는데 어느날 아침 흥미로운 기사를 만났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웹2.0이 제 2의 벤처 붐을 만들고 있는데 한국은 이에 비해 아주 고요하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무언가 촉수가 움직였다. 바로 그 날 밤 '이지클린'을 개발한 나의 절친한 친구 김현철 군을 찾아갔다. "다시 새로운 일을 꾸민다면 바로 지금"이라는 이야기를 했고 결국 나는 바로 그 다음 날부터 낮에는 인턴 일을, 밤에는 무언가 새로운 '웹2.0 서비스'를 개발하는 투잡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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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찾아 다녔다. 일주일 쯤 뒤 위자드닷컴의 클라이언트 사이드 개발을 총괄한 남현우 군이 합류하게 되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위자드의 디자인을 책임지고 있는 배재민 군과 현재 경영팀장을 맡고 있는 황숙진 양도 이 때부터 함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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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멤버 여섯명. 이제는 함께 일할 공간이 필요했다. 마침 학교에서는 심사를 거쳐 학생들에게 작은 창업 공간을 빌려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운 좋게도 우리가 킥오프한 즈음에 새 입주팀을 받고 있었고 우리는 현철 군 자취방에 옹기종기 둘러 앉아 대망의 첫 사업계획서를 썼다. 그 때 사업계획서 상에 우리의 사업모델은 '웹 OS'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꿈이 컸지만 당시 (눈에 뵈는게 없었던^^;) 우리는 굉장히 진지했다.

지금이야 포털의 정보 독점을 깨겠다, 위젯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명확한 비전을 가지고 살지만 그 때에는 정말 그랬다. 무려 '웹 OS'를 꿈꾸고 있었고 아직 위자드닷컴이나 개인화포털 같은 것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회사 이름 조차 짓지 못했었다. 사실 지금와서야 얘기지만 위자드웍스가 왜 위자드웍스가 되었느냐? 사실 의외로 참 소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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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개인적으로 현재의 위자드닷컴이 된 'wzd.com' 도메인을 가지고 있었고, 우리의 사무실 입주 신청서 마감은 30분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자취방에 프린터가 없어 얼른 근처 PC방으로 뛰어가 인쇄를 마치고 신청서를 접수해야 했는데 그러자면 끝까지 비워 놓은 지원서 첫 장 첫 빈 칸-창업팀 이름-을 바로 채워 넣어야만 했다. 많은 후보들이 있었지만, 결국 마지막에 회사 이름은 3분만에 결정됐다. '마법과도 같은 일을 하자', '마법사가 되자' 는 의미에서 '위자드웍스'로 정했다.

오픈마루가 비슷한 이름의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이름을 짓게 되는다는 일화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오랜 고민을 할 시간이 없어서' 위자드웍스가 되었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난 지금은? 아주 훌륭한 작명이었다고 생각한다. 다섯 음절의 짧고 명확한 발음도 그렇고, '위자드'와 '웍스' 누구나 뜻을 아는 두 짧은 단어의 조합은 이름만으로도 '이 친구들이 어떤 의미로 이름을 지었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윽고 우리는 심사에 통과해 세 평 남짓한 작은 사무실을 얻었다. 나는 본격적으로 위자드웍스를 만들기 위해 혹독했지만 큰 배움을 얻었던 인턴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라면 먹는 벤처 생활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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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설립 당시 나는 주로 사업기획과 서비스기획을 전담했지만 개발 벤처의 특성상 내가 손댈 수 있는 비중은 크지 않았다.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는 큰 그림을 그리고 개발자들이 구현해 내는 과정을 관심있게 지켜보는 관찰자 입장이었고 따라서 내 고유의 업무를 만들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당장 멤버 대여섯명의 개발 벤처에서 내가 맡을 수 있는 고유의 업무란 무엇인가? 기획은 이미 끝나고 개발도 막바지에 이른 상황이었고 나는 인턴 생활에서 배운 작은 경험이나마 최대한 발휘를 해보기로 마음 먹었다.

나는 철저히 두 갈래 접근을 하기로 했다. 블로고스피어에서는 '젊고 열정 넘치는 신생 벤처'의 메세지를 강조하는 감성적 접근을, 언론매체에는 젊고 가진 것 없는 우리의 실체보다는 서비스를 훨씬 더 강조하여 '국내 최초의 개인화 포털'이라는 메세지를 지속적으로 전달하는데 주력했다. (사례 1 2 3 4 5 6)

아주 엄밀히 이야기하면 (위젯 기반 컨텐츠 배치가 가능한) 국내 최초의 개인화 포털이었지만 그런 것은 중요한게 아니었다. 당시 아무 것도 가진게 없던 우리로서는 적어도 우리가 들어가려 하는 '개인화'라는 카테고리를 장악해야만 했다. 우리가 베타 #1을 처음 런칭하던 작년 8월 14일은 기존에 있던 국내 서비스인 피코디요즘엔 모두 정확히 현재의 UI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최초'를 강조하며 위젯이 중심되는 우리의 UI를 개인화 포털의 '표준 UI'로 인식시킬 필요성이 있었다.

우리는 줄곧 그 메세지를 다양한 언론 매체를 통해 전달했고, 실제로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많은 국내외 서비스들의 UI가 우리가 지향하던 방향대로 통일되어 갔다. 이는 자연스레 개인화 카테고리의 Consideration set 내에서 우리 브랜드가 선도에 서게하는 중요한 이유가 됐다. 이는 다르게 말해 만약 국내의 경쟁 개인화 서비스들이 기존에 자신들이 가던 방향대로 각기 다른 UI로 발전해 갔더라면 지금의 위자드닷컴이 개인화라는 키워드를 대변하는 서비스가 되어가는 과정에 있어서 크나큰 장애물이 되었으리라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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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자드웍스 대표이사 표철민 (미스타표)

Posted by 미스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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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무얼 잘못했는지 당당히 밝히고 '노력해야겠다'며 글을 마치는 이의 모습은 아름답지 않은가. 그것도 젊으니까, 얼마든지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으니 나올 수 있는 자세가 아닐까 한다.

아예 이참에 우리 회사 블로그에는 <1주년 기념 연재>의 형식을 빌어 지난 시간 우리가 잘못한 것들을 반성하는 기회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이같은 작업은 남에게 간접 체험의 기쁨을 선사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글을 쓰는 당사자에게는 단편적 사건으로서 잊혀질 기억들을 경험으로 체계화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짝 엿볼 수 있었던 '친근함과 새로움의 차이'에 대한 simple의 고민과, 곧 올라올 여러 멤버들의 만만치않은 고민들이 모여 '학습 조직' 위자드웍스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마침 학습 조직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는 우리 회사의 모토이다.
이 이야기는 따로 포스팅을 할애할 참이다.


Posted by 미스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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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워 논란이 뜨겁다. 영화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블로고스피어에서도 같은 이슈로 이토록 오랫동안 많은 글들이 쏟아진 일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미 이송희일 감독의 비판도 있었고, 오늘은 청년필름의 김조광수 대표가 "심형래 감독, 겸손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더란다.

지난 주말 가벼운 마음으로 디워를 보러 갔는데 이른 오후 시간이었음에도 이미 심야영화까지 전석이 동 나 있었다. 혹자는 초딩의 힘이라느니 애국주의에 호소한다느니 말들이 많지만, 작품성 여부를 떠나서 많은 이들이 찾고 있는 영화임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겠다.

감독이나 영화사 대표는 '수준 이하의 작품성'을 이야기하지만, 일각에서는 '화려한 휴가'와 '디 워' 덕분에 올해 한국 영화 점유율을 크게 올릴 수 있게 되어 희색이라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매번 사회적, 정치적, 또는 이번 사례와 같이 의외로 아주 가벼운 동기로 발화되는 이른바 '쟁점'들을 맞이하며 느끼는 바가 많다.

논쟁의 다른 사례로 지난번 황우석 교수 사건 때는 사건의 본질을 떠나 그를 향한 신앙과도 같은 인간적 추종과 객관적 진실 사이에서 논점이 흐트러지고 있었고, 강정구 교수 사건 떄는 와해된 보수와 실패한 진보를 다시 모이게 하는 구심점으로 철저히 이용당하는 것을 경험했다.

이번 논란도 이른바 '논란'이라는 아주 편리한 단어의 탈을 쓰고, 영화 '디워'의 작품성 여부를 떠나 갈수록 대중문화계의 순수 혈통을 수호하려는 자와 그들의 순혈주의에 이미 익숙해진, 그럼에도 불구하고 '댓글'이라는 간단한 도구를 통해 반항의 본능을 배설하는 군중들 사이의 의미없는 싸움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결국, 누가 뭐라하든 '디워'는 영화로서 아주 가볍게-누군가는 지나친 가벼움이라 하겠지만 무슨 상관이랴- 군중들로 하여금 충분히 소비되고 사라질 것이다. 지금 쏟아지는 의견들은 영화감독(이 된 개그맨) 심형래가, 순혈주의에 저항하는 영웅인듯 포장되며 흥행을 더욱 가속화할 뿐이다. 단지 그 뿐이다. 지금 이뤄지는 소모적인 논쟁이 한국 영화계에, 대중 문화계에 주는 영향은 아.무.것.도.없.다.

논쟁은 명확한 논점이 흐려지는 순간, 무의미한 외침이 될 뿐이다.


Posted by 미스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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