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관리의 불편함으로 인해 티스토리로 이전했습니다.
조금 써보니 와- 티스토리 정말 좋은데요 +_+ 뿅~ 갔습니다. :D

그나저나 블로그엔 뭘 써야할지 항상 고민되네요. 뭐를 좀 소신껏 쓰자니 개인의 생각을 회사의 그것으로 보시는 분이 있을 것 같아 항상 부담스럽고, 아예 안쓰자니 또 소통의 창구가 없는 것 같아 아쉽고..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여러모로 잘못된 이야기, 이 바닥의 문제, 사람에 대한 이야기 등등을 너무나 많이 접하게 되는데 이게 더 답답한 것 같습니다. 아예 아무 것도 모르면 상관이 없을텐데, 이러저러한 소식들을 접하고도 함구해야만 하는 상황이..

이 바닥에 있는 우리가, 아니 사실 한국인이 꼭 갖추어야 할 덕목이 저는 요새 관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잘못을 뉘우치는 이에게 기꺼이 다가가 포용해 줄 수 있는 마음, 더 나아가 조금만 노력하면 얼마든지 따뜻하게 만들 수 있는 둘 사이의 관게를 위해 노력하는 마음. 관용.

저에게도 관용이 필요하고, 제가 잘못해 용서를 구했던 수많은 이들에게도 관용의 마음이 있었기를 바라고, 삭막한 모니터를 바라보며 네모난 자판에 줄줄줄 치며 하루를 보내는 이 차가운 바닥에 있는 우리들 모두가 꼭 갖출 수 있었으면 하는 덕목입니다.

일생 속에서 잘못은 수도 없이 하니 앞으로도 서로가 서로에게 죄를 짓고 살겠지만, 누군가 진심으로 용서를 구할 때 흔쾌히 웃으며 용서할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 두 번은 용기를 내어 용서를 구한다 해도, 그 이상은 무안하기 때문에라도 다시 용서를 구하러 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굳이 지금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제가 당장 어제 오늘 무슨 잘못을 했거나 누군가 제게 잘못을 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갑자기 그간 느낀 소회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충분히 서로에게 관용을 배풀었다면 더 좋은 관계로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었을 사람들과 소원해졌고, 많은 이들이 단 한 번의 사소한 실수로 등을 돌리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쓰다보니 포스트의 시작과 끝의 분위기가 사뭇 다른데, 앞으로 저는 이런 종류의 글을 쓰면 되겠습니다. 보고 듣은 사건은 못본척 못들은척 하고, 이 이상한 사건들의 반복과 총합이 제게 주는 기쁨, 즐거움, 아쉬움, 슬픔, 원통함 등등의 소회나 여러 교훈들을 소개하면 좋겠군요. 저 혼자 느끼고 마는 교훈은 아무래도 2.0 시대에 좀 허전하니까요.

요샌 일이야 회사 분들이 참 열심히 도모하고 있어서 잘 되어 가는데 정작 개인적으로는 이 바닥의 '바닥'이 자꾸 보여 좀 힘듭니다. 우리가 이대로 가다가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인데, 여기서의 '우리'란 예전 같으면 나와 내 옆사람들이었겠지만 이제는 나와 내 옆사람들이 평생 마주치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을 말하지요.

사람 사는 사회야 어딜가나 마찬가지겠지만 저는 아직도 여기가 적응이 쉽지 않네요. 언젠가는 무얼 보고 들어도 그저 허허 웃으며 이 블로그 제목처럼 (타산지석으로) 배우고, (경험 많은 촌로와 같이) 즐기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미스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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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텔레콤의 새로운 오픈마켓 11번가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길래 들어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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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쇼핑'이라고 올 플래시로 지도 위에서 오프라인 상가 밀집 지역을 찾아가는 듯한 느낌을 살린 서비스가 있는데 시도 자체가 매우 신선하다. 물론 이에 대해 속도가 느리고 실제 구매로 이어질지가 회의적이라는 평가들이 많은데, 무엇이 어찌되었든 기획자로부터 개발자들까지 여러 부분에서 '새로움'을 만들기 위해 들인 노력만큼은 충분히 높게 평가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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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쇼핑 - 각 지역별 특성을 살려 오프라인의 사용자 경험을 옮겨 왔다.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업계 전체가 조금씩 발전할 수 있다. 싸이월드 홈2가 너무 새로워 실패라 이야기하지만 나는 여전히 진행형이라 믿는다. 미니홈피 역시 처음에는 완전히 새로운 시도였다. 사람들은 결과에 따라 과정을 합리화한다. 싸이월드가 성공했기 때문에 그제서야 도토리 개념이 훌륭했고 미니홈피가 따뜻했다 하지만 실패했다면 토로리 개념이 난해했고 미니홈피는 폐쇄적이었다고 했을 사람들이다.

부디 새로운 시도들이 존중받는 업계가 되길 바란다.

개척의 문화가 자리 잡혀야만 비로소 우리 서비스들 중에서도 해외에 자랑할만한 작품이 나올 수 있으리라. 지금 이 밤도 어딘가에서 그 '새로움'을 위해 머리를 부여잡고 있을 진정한 개척자들에게 마음으로부터 깊은 응원을 보낸다.

"화이팅!"

Posted by 미스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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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노무현을 멀리서나마 만날 기회가 지난 5년간 나에겐 서너 차례 있었다.

2002년 12월 19일, 당시 내가 머물던 사무실 겸 숙소는 민주당사 바로 뒤에 있었다. 나에겐 심지어 투표권조차 없는 때였지만 이름 없던 후보 노무현의 경선 통과와 국민들의 돼지저금통 모금, 정몽준과의 연대와 지지 철회, 그리고 당선까지 하루하루 내 바로 곁에서 펼쳐지던 여의도의 쉴새없는 들썩임은 내 눈에 너무나 화려한 축제와도 같았다.

당선이 확정된 그 밤, 나는 무턱대고 거리로 나갔다. 그저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 밖으로 나왔을 뿐이다. 밤 열시가 넘은 늦은 시각임에도 그곳엔 환희에 찬 이들로 가득 찼더랬다. 당시 어떤 정치적 성향도 없고 정치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나는 그저 그들 사이에 끼어 무덤덤하게 그를 처음 만났다. 해맑게 웃으며 들어오는 당선자 노무현을.

노무현을 두번째 만난건 취임식 때였다. 나는 운 좋게도 추첨을 통해 취임식 초청장을 얻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취임식장인 국회와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였고 간접적으로 경험한 '축제'의 끝이자 시작을 더욱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약속했다. '나를 지지해 준 국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모두를 끌어안을 수 있는 통합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그로부터 5년 뒤, 나는 훌쩍 컸고 대통령의 그 약속이 얼마나 순수한 이야기였는지를 이제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세번째 만남은 학교에서였다. 그는 당시 임기 중이던 김우식 총장을 비서실장으로 발탁했다. 대통령은 고마움의 표시였는지 연세대를 찾아 강연했다. 나는 당시 대학교 1학년이었고 대통령은 탄핵 사태로부터 돌아온지 불과 일주일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대통령의 강연은 그 참여가 제한적이었는데 마침 1학년답게 <정치학 입문>을 수강하던 나는 운 좋게도 강연의 수혜자가 될 수 있었다.

그가 했던 이야기의 전문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여전히 또렷하게 기억한다. 대통령은 소탈했다. 그는 정말 솔직했고 따뜻했다. 강당에 모인 천여 명의 학생들은 대통령과 함께 소통하며 웃음지었고 자발적으로 박수를 쳤다.

다음날 아침 나는 여느 날처럼 집에서 십수년째 구독하는 조선일보를 들었다. 망치로 뻥 한 방 맞은 것 같았다. 어제 강연 이야기였고, 노 대통령의 두 시간에 걸친 명강연 속에서 웃으며 잠깐 한 마디 던지고 넘어가던 농담을 1면 헤드라인으로 뽑았다. 너무나 억울했다. 내가 한 이야기도 아닌데도 내가 이른바 '노빠'가 아닌데도 조선일보가 그냥 마냥 괘씸했다. 기자도 귀가 있고 양심이 있다면 어떻게 이 정도로 사실을 왜곡하고 여론을 호도할 수 있단 말인가. 그 날로부터 나는 부모님께 말도 없이 한겨레를 신청했다. 이 일은 반 년 뒤 내가 신문방송학을 선택하게 되는 어쩌면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는지 모르고 한 편으론 지금 언론학도로서 우리 언론의 모습을 너무나 절망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첫 사건이 되었는지 모른다.

대통령 노무현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2006년 신년 국정연설 때였다. 일전의 강연을 연세리더십센터에서 주최한 것이 인연이 되어 당시 리더십센터 관련 일을 보고 있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가까이서 대통령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나로서는 2002년부터 '옆 건물 주민'으로 가까이서 지켜봐 온 정치인으로써, 많은 우여곡절을 돌고 돌아 다시 만난 그는 이제 많이 차분해져 있었다. 여전히 돌발 발언과 이른바 '대통령다움'의 부재로 말이 많았지만 내가 가까이서 본 정치인 노무현은 오히려 그 '대통령다움'의 부재로인해 더욱 가까운 친구 같은 대통령일 수 있었다.

그가 아니었으면 누가 친일의 잔재를 뒤늦게나마 치우려 노력했을 것이며 그가 없었더라면 대한민국의 권위주의는 단 한 번이나마 도전 받을 수 있었겠는가. 정계, 법조계, 언론계를 포함하여 그간 사회적 호사를 누려왔던 이들에게 기득권의 해체를 주장하며 들쑤실 수 있었던 대통령 노무현. 그는 이 시대에 반드시 한 번 거쳐 가야만 했을 꼭 필요한 지도자였다고 나는 믿는다.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사라진 시대, 그가 이끄는 참여정부는 지난 40년 마지막 남은 난제들의 (그의 표현대로) '설거지 정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나는 단 한 번도 개인적인 인사를 나눈 적 없는, 그러나 이러저러한 발치에서 여러 차례 마주친 대통령 노무현에게 큰 고마움을 가지고 있다. 비록 나에겐 선거권이 없었고 무언가 액션을 취할 입장도, 그럴 의지도 없는 그저 '관찰자'일 뿐이었지만, 노 대통령은 나에게 원칙과 신념을 지키며 사는 삶의 가치와 어려움, 그리고 아직도 이 세상에 변화시켜야만 하는 대상이 너무나도 많다는 사실과 이에 일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지를 심어 주었다. 지난 5년은 나뿐 아니라 우리에게 기득권의 '불편한 진실'을 마구 들추어 내며 사회의 여러 주요 구성요소가 (때로는 아주 더럽게) 살아가는-또는 살아남는- 방식을 직간접적으로 체득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는 점에서 나는 노통에게 기꺼이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다.

특히 공통 명제가 사라진 시대,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하며 사는 이 절망적인 대학생들의 사이에서 나는 무얼 꿈꾸며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원초적 궁금증을 해결해 준데 대해서 깊이 감사한다.

학교 방송국에 있으면서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의 강연도 가까이서 준비했던 기억이 있다. 모든 것을 스폰지처럼 흡수할 수 있는 젊은이의 능력 때문일 수도 있고, 아직 이념에 기반해 사람을 보지 않던 까닭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역시 그 강연은 굉장히 배울게 많았던 시간으로 기억되어 있다.

이제는 정치학과 철학을 곁눈질로나마 배우고, 세상을 나만의 작은 프레임으로 규정지을 수 있게 된 나로서는 여전히 노통에게 그토록 모질었던 야당의 모습에 깊은 아쉬움이 남아있긴 하지만, 그래도 당시 인간 이명박에게는 인간 노무현과는 또 다른 분명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원칙과 소신'으로 통하는 노무현의 매력과는 물론 한참 다르지만, 연사 이명박에게도 그와는 다르게 사람을 이끄는 묘한 힘을 직접 느꼈던 까닭에, 그리고 어찌했든 '이 사람 정말 열심히 살았다'는 순진한 동감을 가졌던 기억 탓에, 5년 전 그날 밤 만큼의 환희는 여전히 느낄 수 없지만 나는 새로운 대통령 이명박에게도 여전히 기대와 소망을 걸어보고 싶다.

여전히 나는 모두의 관찰자로서 그들의 공과를 깨달을 수 있는,
'젊은이'라는 특권을 누리고 있으니 말이다.


Posted by 미스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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