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표철민입니다.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을 남깁니다. 작년 7월에 '일에 집중하겠다'는 글을 남긴지 8개월 만입니다. 글에서 밝힌대로 외부 강연을 끊고, 인터뷰를 사양하며 저는 온전히 저를 위한 시간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굉장히 값진 시간이었고 제가 일하고 있는 두 회사에도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인사를 드리다보니 무엇부터 시작해야할지 잘 모르겠는데, 우선 그간의 회사 이야기부터 드리겠습니다.

위자드웍스는 작년 한 해 굉장히 다이내믹한 한 해를 살았습니다. 몇 년간 노력해 키워온 위젯 시장이 급격히 줄어들고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하면서 사업구조의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2009년 12월에 열린 컨퍼런스에서 제가 '한국은 절대 스마트폰이 될리 없다'고 말했을만큼 시대 변화에 둔감했습니다. 때마침 직원들 일부가 분사해 독자적인 회사를 차리는 아픔도 겪었고, 학내 벤처로 시작해 저작권에 무지했던 탓에 정품 S/W 단속에 걸려 8천만원을 무는 어려움도 겪었습니다. 또한 퇴사한 직원이 가지고 있던 회사 주식을 되사줄 의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신의를 생각해 또 8천만원을 들여 되사들이는 결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작년 한 해는 위자드웍스에게 가장 힘든 한 해였습니다.

하지만 위자드웍스는 또 한 번 잘 살아 남았습니다. 남들보다 조금 늦게 스마트폰 비즈니스를 시작했지만, 워낙 오랫동안 위젯을 만들며 작은 화면을 설계하는 노하우가 있었기 때문에 SK텔레콤의 T스토어와 KT의 올레마켓, 안드로이드 마켓과 애플 앱스토어를 통해 한 해 80종 이상의 앱을 쏟아냈습니다. 위젯으로도 큰 인기를 끌었던 '매직데이'는 모바일 앱으로도 큰 사랑을 얻어 하루 30만 명이 매일 실행하는 앱이 되었고, 그간 내놓은 앱들은 도합 300만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모바일 시장에 가장 빨리 적응한 회사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창사 이래 가장 어려운 시기였지만 우리 직원들이 정말 잘 버텨냈습니다. 다시금 이 지면을 빌어 우리 멤버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현재 저와 스태프들은 위자드웍스가 흔한 모바일 앱 개발사를 넘어, 2006년 위자드닷컴 런칭 이후 견지해 온 '혁신적인 웹서비스 업체'의 비전을 지켜갈 수 있도록 몇 가지 새로운 웹서비스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변화에 적응하느라 작년 한 해 큰 히트작이 없었지만 우리는 다시 안정 궤도에 올라 미래를 설계하고 있습니다.

루비콘게임즈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작년 1월, 제가 의기양양하게 창업멤버를 모집하는 이 글을 띄운 이후 10여명의 멤버들이 모여 닻을 올렸고 처음에는 초라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이 멤버들로 어떻게 훌륭한 소셜 게임을 내놓을 수 있을까 걱정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머지 않아 뽀잉뽀잉과 슈팅스타, 그리고 스타시티가 출시되었고 조금씩 게임 회사의 '구력'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여전히 선배 회사들에 비하면 많이 모자라지만 적어도 이제 '꼴찌에서 시작했던 회사' 루비콘게임즈가 1등을 꿈꾸는 게임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루비콘의 새 게임은 5월에 출시됩니다. 처음부터 아무 것도 없었고, 지금도 여전히 배고픈 회사이기 때문에 루비콘 멤버들의 마음은 절실합니다. 절실함이 극단에 치달았을 때 자기도 모르는 잠재력이 발현된다는 사실을 이해하기에 저와 멤버들은 많은 기대를 가지고 새로나올 게임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소식이 뜸했던 한 해 저는 이렇게 살아 왔습니다. 두 회사가 매우 다이내믹한 변화를 겪으면서, 강연과 인터뷰를 끊고 생긴 제 시간은 고스란히 회사에 투입되었습니다. 루비콘을 새로 세우면서 혹자는 '하나도 하기 힘든데 두 개나 하다니 절대 잘 될리 없다'고 힐난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위자드 주주들은 만약 루비콘을 하지 않았다면 위자드의 사업 지평이 얼마나 좁아졌을까에 대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습니다.

제가 올해로 12년 차에 접어들면서 깨닫는 것은 무슨 일이든 항상 적극적으로 벌리고 있지 않으면 기회도 그만큼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든 기회의 진주들을 내가 걷는 길에 열심히 뿌리고 다녀야 언젠가 그 진주 중 일부가 다시 돌아와 우리에게 더 큰 기회를 만들어 줍니다. 지금 '그게 되겠어?', '너무 튀지는 않을까?'하는 소극적인 생각에 움추리고 세상을 향해 적극적으로 메시지를 뿌리고 다니지 않으면 미래는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이제 두 회사가 새로운 꿈을 꾸며 안정 궤도에 들어선 지금이 다시 진주를 뿌리기 시작할 때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고는 책을 한 권 들고 나왔습니다. 이 책은 우선은 위자드웍스와 루비콘게임즈가 살아온 이야기를 사실대로 기록한 책입니다. 조금 멀게는 제 첫 회사였던 다드림커뮤니케이션과 NGO인 한국청소년벤처포럼이 만들어지고 이뤄온 일들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진짜 목적은 요즘의 대학생과 20대에게 다른 길을 걷는다는 것의 가치를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모두가 열심히 뛰지만 결코 행복하지 않은 요즘의 젊은이들에게 경쟁이 없는 길로 가야만 내가 조금만 뛰어도 나밖에 안보이기 때문에 내 노력이 온전히 인정받을 수 있다는 관점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나만의 다른 길을 찾을 수 있을지, 그리고 평범하게 대학생이 된 그들이 날카로운 촉을 기르며 살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에 집중해야할지를 나름의 체계와 순서를 가지고 설명했습니다.

사실 삶에 체계와 순서라는 것이 있을리 만무하지마는 저는 본격적으로 '자기 계발을 하지 않기 위한 자기 계발서'가 하나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이 책을 썼습니다. 서가에 모든 책들이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해야 더 나은 직장, 공동체로부터 인정받는 이가 될 수 있는지를 설명하지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저는 '왜'에 대한 답으로, 성공이란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나고픈 사람들을 언제든 만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내가 만나고픈 사람을 언제든 만나기 위해서는 그가 나를 만나고 싶을 이유를 만들어 주어야 하고, 그것이 바로 자신만의 전문분야라고 말입니다. 자신만의 전문분야는 결코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평범한 직장인들도 얼마든지 가질 수 있고 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에서는 이글루스에서 활동하는 블로거 '채다인'님이 삼각김밥 리뷰를 쓰며 유명해진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가 처음 한 두 개의 리뷰를 올릴 때 사람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지만 그 리뷰가 100개, 200개를 넘어가며 이제는 어엿한 '편의점 음식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우리 주변에 널린 소재를 가지고 누구나 전문가가 될 수 있으며 설사 그 소재를 아직 제대로 찾지 못한 평범한 학생이라 할지라도 세상을 향한 날카로운 관찰과 통찰을 통해 자신만의 촉을 기를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너무도 많은 이야기를 제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어서 정성을 다해 담았지만 이것이 100% 이해가 되기는 어려울 지도 모릅니다. 다만 저는 성공과 행복으로 이르는 길이 반드시 모두가 뛰는 판에서 끝내 1등을 하는 '마라토너'와 같은 삶만 있는 것이 아니라, 대낮에 나무 밑둥에 누워있다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이나 목욕을 즐기다 부력을 발견한 아르키메데스와 같이 '여유 안에서 색다른 것을 발견하는' 삶도 있다는 것을 우리 젊은 세대가 인지하길 바랄 뿐입니다.

우리 사회가 흔히 이야기하는 'No pain, no gain'이라는 말 역시 우리 젊은 세대의 창의성과 다양성을 대단히 짓밟는 명제일 수 있습니다. 고통이 있어야 더 많이 얻는다니 이만큼 획일적인 이야기가 또 있을까요? 기왕이면 과정에 고통이 적다면, 더 많이 얻으리라는 'Less pain, more gain'(연세대 김주환 교수님 <행복론> 강의에서 인용)의 삶도 있다는 것을 우리 젊은 세대는 이해하고 부디 다르게 생각하는 눈을 떴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길을 걷는다는 것은 분명 외로움이 따른다는 숙명적 고통이 있겠지만, 그 고통은 다른 또래들이 겪지 못하는 나만의 고통이라는 점에서 차라리 큰 축복입니다. 저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또래집단의 동등한 경쟁과 고민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노력이 바로 눈에 띄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이 훨씬 더 행복하고 과정을 즐길 수 있는 삶이라는 사실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요즘 오랜만에 다시 강연을 시작하고 젊은이들을 만나며 느끼는 것은 그들 모두가 다른 길을 열망하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자극해 그 자리에 그대로 붙어 있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다른 삶을 살고 싶은 내가 다니는 토익 학원이 다른 삶을 살고픈 다른 친구를 토익 학원으로 보내고, 다시 그 친구가 학원을 가는 활동이 나를 자극해 나 역시 계속 학원을 다니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답답한 현실인가요?

그런 생각들을 하며 책을 썼습니다. 사실 걱정이 많아 작년 한 해 여러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는데(작년이 제가 일한지 딱 10년이 된 해였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정중히 거절을 하다 어느 출판사 편집장님의 메일로부터 마음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여러 출판사가 계속 해서 제안을 하는 이유는 그만큼 독자들이 듣고싶어 하는 메시지를 당신이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는 말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어려서부터 일을 시작했다는 사실만으로 일면식도 없는 분들에게 많은 욕을 먹으며 살아 왔습니다. '어린 애가 나댄다'부터 '빈 수레가 요란하다' 류의 이야기인데 이런 말들이 어려서부터 정말 많은 상처가 되었습니다. 제가 원해서 '나대'거나 '요란'했던 것이 아니라 그저 남들의 요청에 응하며 살아온 것인데 그런 비난을 받게되는 것이 몹시 억울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위자드웍스를 시작하고는 최대한 일과 관련된 컨퍼런스나 세미나를 중심으로 활동하기도 했지요. 작년 7월에 '이제 같은 이야기는 그만하고 싶다'는 글을 올린 것 역시 그런 취지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편집장님의 이야기로 용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만난 적도 없는 소수의 사람들이 온갖 말을 만들어 내는 것이 두려워 진짜로 이야기가 필요한 수많은 후배들에게 해줘야 할 메시지까지 일부러 죽이고 숨기는 것은 십여년간 선배들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독차지하며 살아온 후배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이란 생각 또한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큰 용기를 내게 되었습니다. 존경하는 선배들이 산을 이루고 있는 이곳에서,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는 제가 책을 낸다는 것이 참 남사스럽고 앞서가는 일이라는 생각이 여전히 있지만, 적어도 감히 제가 논할 수 없는 사업 성공기나 창업론 같은 책이 아니라 후배 학생들을 위한 '다른 삶 지침서'정도라면 선배님들께서 이해해 주시기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책이 나오고 나서 한가지 좋았던 것은 12년간 함께 일한 동료들이 참 행복해 했다는 것입니다. 남들에 의해 긍정적이나 부정적으로 확대 재생산된 이야기가 아니라, 온전히 제 입으로 저와 동료들이 함께 살아온 이야기를 가장 솔직하게 기록하고 10년을 끝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웠습니다. 옛 동료들이 저마다 책을 사서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연락을 해올 때, 내가 또 '빈 수레'라 욕을 먹을지라도 나를 믿고 함께해 준 이들의 시간을 기록으로 남겨 후배들에게 전달했다는 점에서 제 역할을 한 것 같았습니다.

이제 왜 이 혼란스런 시기에 책을 내게 되었나를 설명하고 변명하는 글을 마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책의 초고는 사실 60년대 6.3세대의 학생운동과 80년대 민주화운동으로 시작했습니다. 언제나 사회 변혁의 '주체'로 살아온 대학생들이 왜 공통 명제의 상실과 함께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객체'로 둔갑했나 하는 문제의식으로부터 이 책은 시작했습니다. 개인의 안위만을 생각하게 된 그들에게 민족과 사회적 가치에 눈뜨게 한다면 많을 것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책의 첫 장으로부터 무려 100페이지 가까이 다뤘지만 너무 사회과학 책 같다는 출판사의 지적에 따라 '통편집'되었습니다. 태어나서부터 중학교 3학년 제가 창업하기 이전까지의 수줍은 학생시절 이야기 역시 조금 지루할까봐 통편집했습니다.

책이 나온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판매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이 블로그를 통해 위의 내용이 포함됨 이야기를 한 토막씩 연재해 보려고 합니다. 그 전에 미리 이야기를 만나고픈 분들은 아래 링크를 타고 일독을 권합니다. 인세는 위자드웍스와 루비콘게임즈의 이름으로 좋은 곳에 사용할 예정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유난히 길었던 작년 추석연휴 기간 열흘간 씌여졌습니다. 어차피 그냥 흘려버릴 시간에 보다 의미있는 일을 해보자는 결심에 하루 12시간씩 글을 썼습니다. 이를 시간으로 환산해 책에는 3개월 정도 걸렸다고 표현했지만 사실 연휴를 이용한거라 제 시간에는 별로 지장이 없었습니다. 또 누군가 '사업하는 사람이 일할 시간에 딴짓했다'고 할까봐 미리 밝힙니다. 저는 모두가 노는 시간을 활용했습니다.

앞으로 글을 자주 쓰겠습니다. 진주를 뿌려야지요. 몇달 간 제 시간을 충분히 가져보니 깨달음이 또 하나 있습니다. 내가 '꽁' 박혀 내 일 하는거나, 밖에 나가 사람 만나는거나 성과를 놓고 보면 비슷비슷합니다. 혼자 고민하면 도와주는 이가 없어 더 힘이 들기 때문에 절대적 시간이 많아도 결과가 대단히 월등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원래 하던 것처럼 사람 만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요즘 생각, 고민 들려주다 보면 그들이 하나 둘 다가와 도와주기 때문에 절대적 시간이 좀 적어도 성과의 총량은 비슷합니다.

아, 그래서 시간이 약입니다. 배울게 끝도 없습니다.

- 표철민

제발 그대로 살아도 괜찮아

Posted by 미스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