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10년 4월 30일이었습니다. 막 정신없이 살다가 우연히 오늘이 제가 이 모든 일들을 시작한지 딱 10년이 되는 날이라는걸 알게 되었지요. 사람은 앞으로 살면서 뒤로 곱씹는 동물이기에 잠시 옛 추억을 들춰 보았습니다. 오늘로부터 딱 10년 전, 바로 이 이지요.

저는 99년부터 2000년 사이에 도메인 등록대행으로 처음 일을 시작했습니다. 때로 도메인을 싸게 사서 비싸게 되파는 사업이 아니냐 여쭙는 분들이 계신데 그건 도메인 브로커리지이고 도메인 등록대행이란 누구에게나 어떤 도메인이든 낮은 가격에 등록을 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회사를 말합니다. 땅으로 비유하자면 땅 투자자와 그들의 취,등록을 대행해주는 등기소의 역할이랄까요?

하지만 저도 개인적으로 도메인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 시절 수많은 도메인을 수집했습니다. 그 중에는 지금 좀처럼 구하기 힘든 세 글자 도메인도 몇 개 있고 고유명사나 기술표준과 관련된 닷컴(.com) 도메인도 꽤 됩니다. 그들 중 하나가 지금의 위자드닷컴(wzd.com)이지요.

도메인 사업을 마치며 등록시스템 통계툴을 보니 제가 등록대행한 도메인이 약 2만 개 정도가 됐습니다.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도메인만 200개가 조금 넘는 수준이 되었지요. 200개는 도메인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우스운 숫자입니다. 당시 주요 고객분들은 1,2천 개를 가지고 엑셀로 관리를 할 정도였으니까요.

한 사람이 자기 홈페이지 주소로 지어주려고 한 두 개쯤 등록하는게 일반적인 상황에서 그렇게 많은 도메인을 매일 보고 있으면 감각이 좀 둔해집니다. 때론 세 글자 이름이 눈 앞에서 '등록가능' 메시지를 띄우고 있어도 그냥 '누군가가 등록하겠지'하는 생각이 드는 날이 오지요. 이건 마치 다들 골드 러시에 혈안이 돼 서부로 몰려들던 19세기 중엽, 묵묵히 청바지를 만들어 팔던 레비 스트라우스와 같은 마음이 되는 겁니다. -아니, 오히려 레비가 그들보다 더 감각이 예민했던건가요? :)-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게 잊지 못할 도메인이 하나 있습니다. 금전적 가치도 전혀 없고 심지어 닷컴 도메인도 아니지만 제 인생을 송두리채 바꿔 놓은 도메인 하나. 바로 tokdo.co.kr 입니다.

저는 10년 전 오늘 그 도메인을 '독도사랑동호회'에 기증하며 혼자하던 소꿉장난을 마치고 자연스레 진짜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 나이 도무지 뭐든게 어리둥절하던 열여섯이었지요.

그 사이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제와 말이지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아직 인격으로보나 지혜로보나 무엇이든 성숙하지 못한 채로 세상에 나오게 된 저의 곁을 떠났고 그들이 겪은 여러 아픔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제가 조금이나마 둥글둥글해지고 단단해져서 동료들이나 업계 선배님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일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이 아니면 언제나 이 감사함과 미안함을 전할 수 있겠나 싶어 글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10년 간, 저와 함께했거나 스쳐 지나갔던 많은 분들께 어리디 어렸던 표철민이를 사람답게 받아들여 주시고 함께 일해 주시고 함께 웃어 주시고 때론 걱정해 주시며 이때껏 하루하루 배우는 삶을 살게 해주셨던 것에 깊이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론 여러분이 그렇게 믿고 때론 자기 희생까지 감수하며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아직 딱히 이렇다할 성공을 이루지 못한 것도 저는 사실 좀 송구스럽습니다. 하지만 젊어서 성공이 인생에서 조심해야 할 것 중 하나라는 말도 있으니 더 길게 보면 아직은 오히려 잘된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초년 성공을 이루고도 언제나 겸손하게 사시는 선배님들을 볼 때면 이는 어디까지나 저의 자위(自慰)일 뿐이란 생각도 들지만 말입니다. :)

어쨌든 저도 언젠가는 성공할 날이 올겁니다.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긴 인생의 여정 속에 제게도 기회가 오겠지요. 아마도 크고 작은 골짜기를 숱하게 드나들어야 할 겁니다. 하지만 그게 언제고 간에 적절한 때가 되면 지난 시간을 함께 했던 이들과 다같이 모여 이것이 모두에게 의미있는 여정이었다고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랄뿐입니다.

그러면 제가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 만날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오로지 도움을 받기만 하고 배움을 얻기만 한 것 같은 그 큰 부채의식으로부터 조금이나마 자유로울 수 있겠지요. 그걸 조금 덜어놓기 전까지는 저는 언제나 뛰어야만 할 것입니다.

오늘은 제 인생의 첫 공판이 있었습니다. 소프트웨어 저작권에 둔감한 학내 벤처로 시작한 탓에 직원들이 복제 소프트웨어를 설치했다가 작년 말 한꺼번에 적발되었기 때문이지요. 우리 잘못을 그대로 시인하고 무려 6천여만 원을 지불했습니다. 공소는 물론 기각되었지요. 그럼에도 오늘 사기, 특수절도, 뇌물공여 등으로 구속된 분들과 함께 공판을 치렀고 수개월 간 마음 고생 하면서 또 많은 새로운 배움들을 얻었지요.

이 달에는 우리 회사에 계시다 다른 회사를 창업하신 대표님의 주식을 긴 우여곡절 끝에 모두 되사들였습니다. 이 역시 작년부터 시작해 모두 8천만 원이 들었지요.

둘 다 벤처기업에게 굉장히 큰 지출이지만 아마도 회사 역시 제 개인과 마찬가지로 크고 작은 골짜기를 하나씩 지나며 앞으로 천천히 전진하는 과정일겁니다. 회사가 이렇게 배워가고 성장하며 저도 크고 함께 하는 모든 분들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겠지요.

10년의 지난 시간이 제게 미친 영향이 정말 엄청난만큼 지금 함께 하고 있는 동료들, 그리고 앞으로 함께할 이들의 삶 역시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멀리 가서 돌아봤을 때 크게 변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고 저는 자신합니다. 그리고 또 이 길을 망설이는 많은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권유하고 싶습니다. 매순간이 어렵지만 또 그만큼 많이 배울 수 있으니 말입니다.

지난 시간은 사실 좀 아픈 일들도 있었습니다. 허나 제가 겪은 아픔들이 진짜로 괴로운 분들에 비하면 정말 보잘 것 없는 것들이기에 저는 평소에 이런 말은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정확히 10년 전의 독도 기사를 들추면서 문득 생각난 이름이 하나 있습니다.

김제의(金濟義). 제게 독도 도메인을 얼마에 파시겠느냐고 처음으로 전화를 걸어온 이입니다. 처음 독도사랑동호회 사무실에 가서 그 무너져가는 풍경을 마주했을 때에도 해맑게 웃으며 자리를 내어주던 이입니다. 사람들이 별로 신경도 안쓰던 독도 문제를 위해 자기 본업도 내어 놓고 일본을 규탄하는 집회에서 핏발을 세우던 그는 스물일곱. 이제 딱 저와 비슷한 나이의 청년이었습니다.

청년은 독도 문제와 민족 문제에 열을 내며 흔한 감투 하나 없이 '독도수호대 회원'의 이름으로 전국을 누볐습니다. 그런 그는 이제 여기에 없지만, 아무도 그의 부재와 존재 자체를 알지 못합니다. 마땅히 영웅 대접을 받을만해도 그러지 못한 이가 어디 한 둘이겠냐마는 적어도 독도 도메인으로 모든 삶의 변화를 맞았던 저 하나만큼은 마음 속 깊은 영웅으로 오늘 그를 기억하고 싶습니다.

그를 마지막으로 만난 날 그는 제게 화엄경을 선물했습니다. 저야 중3 학생이 내용을 이해할리 만무했을테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젊은 나이의 그는 심오한 화엄경의 어디가 좋았는지 궁금합니다. 어쨌든 오늘은 어디선가 찾은 그 화엄경의 한 구절로부터 우리가 앞으로 겪을 숱한 '잃음'이 곧 더 큰 '얻음'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하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여러분 다시금 지난 10년간 아무 것도 모르는 저를 보듬어 주시고 일일이 가르쳐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직 터무니없이 부족하지만 선배님들과 동료들의 배움을 꾸준히 얻어가며 나중에 크게 쓰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

- 故 김제의 님을 추도하며, 화엄경 中

Posted by 미스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