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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2.25 대통령과 젊은이 4

대통령 노무현을 멀리서나마 만날 기회가 지난 5년간 나에겐 서너 차례 있었다.

2002년 12월 19일, 당시 내가 머물던 사무실 겸 숙소는 민주당사 바로 뒤에 있었다. 나에겐 심지어 투표권조차 없는 때였지만 이름 없던 후보 노무현의 경선 통과와 국민들의 돼지저금통 모금, 정몽준과의 연대와 지지 철회, 그리고 당선까지 하루하루 내 바로 곁에서 펼쳐지던 여의도의 쉴새없는 들썩임은 내 눈에 너무나 화려한 축제와도 같았다.

당선이 확정된 그 밤, 나는 무턱대고 거리로 나갔다. 그저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 밖으로 나왔을 뿐이다. 밤 열시가 넘은 늦은 시각임에도 그곳엔 환희에 찬 이들로 가득 찼더랬다. 당시 어떤 정치적 성향도 없고 정치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나는 그저 그들 사이에 끼어 무덤덤하게 그를 처음 만났다. 해맑게 웃으며 들어오는 당선자 노무현을.

노무현을 두번째 만난건 취임식 때였다. 나는 운 좋게도 추첨을 통해 취임식 초청장을 얻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취임식장인 국회와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였고 간접적으로 경험한 '축제'의 끝이자 시작을 더욱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약속했다. '나를 지지해 준 국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모두를 끌어안을 수 있는 통합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그로부터 5년 뒤, 나는 훌쩍 컸고 대통령의 그 약속이 얼마나 순수한 이야기였는지를 이제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세번째 만남은 학교에서였다. 그는 당시 임기 중이던 김우식 총장을 비서실장으로 발탁했다. 대통령은 고마움의 표시였는지 연세대를 찾아 강연했다. 나는 당시 대학교 1학년이었고 대통령은 탄핵 사태로부터 돌아온지 불과 일주일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대통령의 강연은 그 참여가 제한적이었는데 마침 1학년답게 <정치학 입문>을 수강하던 나는 운 좋게도 강연의 수혜자가 될 수 있었다.

그가 했던 이야기의 전문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여전히 또렷하게 기억한다. 대통령은 소탈했다. 그는 정말 솔직했고 따뜻했다. 강당에 모인 천여 명의 학생들은 대통령과 함께 소통하며 웃음지었고 자발적으로 박수를 쳤다.

다음날 아침 나는 여느 날처럼 집에서 십수년째 구독하는 조선일보를 들었다. 망치로 뻥 한 방 맞은 것 같았다. 어제 강연 이야기였고, 노 대통령의 두 시간에 걸친 명강연 속에서 웃으며 잠깐 한 마디 던지고 넘어가던 농담을 1면 헤드라인으로 뽑았다. 너무나 억울했다. 내가 한 이야기도 아닌데도 내가 이른바 '노빠'가 아닌데도 조선일보가 그냥 마냥 괘씸했다. 기자도 귀가 있고 양심이 있다면 어떻게 이 정도로 사실을 왜곡하고 여론을 호도할 수 있단 말인가. 그 날로부터 나는 부모님께 말도 없이 한겨레를 신청했다. 이 일은 반 년 뒤 내가 신문방송학을 선택하게 되는 어쩌면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는지 모르고 한 편으론 지금 언론학도로서 우리 언론의 모습을 너무나 절망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첫 사건이 되었는지 모른다.

대통령 노무현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2006년 신년 국정연설 때였다. 일전의 강연을 연세리더십센터에서 주최한 것이 인연이 되어 당시 리더십센터 관련 일을 보고 있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가까이서 대통령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나로서는 2002년부터 '옆 건물 주민'으로 가까이서 지켜봐 온 정치인으로써, 많은 우여곡절을 돌고 돌아 다시 만난 그는 이제 많이 차분해져 있었다. 여전히 돌발 발언과 이른바 '대통령다움'의 부재로 말이 많았지만 내가 가까이서 본 정치인 노무현은 오히려 그 '대통령다움'의 부재로인해 더욱 가까운 친구 같은 대통령일 수 있었다.

그가 아니었으면 누가 친일의 잔재를 뒤늦게나마 치우려 노력했을 것이며 그가 없었더라면 대한민국의 권위주의는 단 한 번이나마 도전 받을 수 있었겠는가. 정계, 법조계, 언론계를 포함하여 그간 사회적 호사를 누려왔던 이들에게 기득권의 해체를 주장하며 들쑤실 수 있었던 대통령 노무현. 그는 이 시대에 반드시 한 번 거쳐 가야만 했을 꼭 필요한 지도자였다고 나는 믿는다.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사라진 시대, 그가 이끄는 참여정부는 지난 40년 마지막 남은 난제들의 (그의 표현대로) '설거지 정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나는 단 한 번도 개인적인 인사를 나눈 적 없는, 그러나 이러저러한 발치에서 여러 차례 마주친 대통령 노무현에게 큰 고마움을 가지고 있다. 비록 나에겐 선거권이 없었고 무언가 액션을 취할 입장도, 그럴 의지도 없는 그저 '관찰자'일 뿐이었지만, 노 대통령은 나에게 원칙과 신념을 지키며 사는 삶의 가치와 어려움, 그리고 아직도 이 세상에 변화시켜야만 하는 대상이 너무나도 많다는 사실과 이에 일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지를 심어 주었다. 지난 5년은 나뿐 아니라 우리에게 기득권의 '불편한 진실'을 마구 들추어 내며 사회의 여러 주요 구성요소가 (때로는 아주 더럽게) 살아가는-또는 살아남는- 방식을 직간접적으로 체득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는 점에서 나는 노통에게 기꺼이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다.

특히 공통 명제가 사라진 시대,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하며 사는 이 절망적인 대학생들의 사이에서 나는 무얼 꿈꾸며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원초적 궁금증을 해결해 준데 대해서 깊이 감사한다.

학교 방송국에 있으면서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의 강연도 가까이서 준비했던 기억이 있다. 모든 것을 스폰지처럼 흡수할 수 있는 젊은이의 능력 때문일 수도 있고, 아직 이념에 기반해 사람을 보지 않던 까닭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역시 그 강연은 굉장히 배울게 많았던 시간으로 기억되어 있다.

이제는 정치학과 철학을 곁눈질로나마 배우고, 세상을 나만의 작은 프레임으로 규정지을 수 있게 된 나로서는 여전히 노통에게 그토록 모질었던 야당의 모습에 깊은 아쉬움이 남아있긴 하지만, 그래도 당시 인간 이명박에게는 인간 노무현과는 또 다른 분명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원칙과 소신'으로 통하는 노무현의 매력과는 물론 한참 다르지만, 연사 이명박에게도 그와는 다르게 사람을 이끄는 묘한 힘을 직접 느꼈던 까닭에, 그리고 어찌했든 '이 사람 정말 열심히 살았다'는 순진한 동감을 가졌던 기억 탓에, 5년 전 그날 밤 만큼의 환희는 여전히 느낄 수 없지만 나는 새로운 대통령 이명박에게도 여전히 기대와 소망을 걸어보고 싶다.

여전히 나는 모두의 관찰자로서 그들의 공과를 깨달을 수 있는,
'젊은이'라는 특권을 누리고 있으니 말이다.


Posted by 미스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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