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점심은 없다'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0.07.05 공짜 점심은 없다. (21)
요새 결심을 하나 했습니다. 앞으로 당분간만이라도 온전히 '제 시간'을 살아야겠다는 것입니다. 수 년을 정신없이 살다가 최근에 문득 캘린더를 열어보니 제 일상의 7할은 강의, 인터뷰, 모임 등 남을 위한 시간이더군요.

실제 강의나 인터뷰를 하는 시간은 한 두 시간이지만 그 한 두 시간 만나는 이들에게 최대한의 만족을 주기 위해 사실 뒤에선 수십 시간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른바 '위젯 이반젤리스트'로 자청하고 나섰던 2007년 이후로 지금까지 저는 거의 매주 수십 시간을 남의 만족을 위해 사용한 셈입니다.

그래서 한 5월부터인가 저희 홍보팀에 주문한 일은 회사 일과 직접 관련이 없는 청년 창업이니 기업가 정신이니 하는 인터뷰 요청들을 모두 정중히 거절하는 것이었습니다.

6월부터는 그동안 만난 분들이 감사하게도 여기저기 불러주신 여러 모임들에 나가지 않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모임들에는 저마다 너무나 훌륭하신 분들이 많지만 제가 계속 남의 시간을 살다간 머잖아 그 모임들에 낄 수 없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시작했습니다. 아무쪼록 저를 불러주신 감사한 분들께는 이 지면을 빌어 넓은 양해를 구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7월 이 달부터는 조금 더 나아가 강의를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강의는 제 시간을 잡아먹는 매우 큰 요인입니다. 청중은 언제나 새로운걸 원하고 기왕이면 더 재밌기를 바랍니다. 저 역시 기대에 부응하지 않고는 못베기는 성격이라 굉장히 많은 시간을 투자합니다. 그래서 그걸 일부러 좀 끊기로 했습니다.

제가 요즘 이렇게 하나씩 제 시간을 되찾으려는 노력을 하면서 종종 오해하시는 분들도 만났습니다. '저기는 인터뷰 해놓고 우리가 해달라니 안해주네?'라거나 '이제 우리 모임은 필요없다 이거지?'하는 제게는 매우 듣기 힘든 이야기들이었습니다.

혹시나 그런 오해를 하시는 분들이 계시거나 또는 앞으로 비슷한 오해를 하시는 분들이 생길까봐 제 개인적인 결심을 오늘 이 글로 분명히 밝혀두는 것입니다. 머잖아 제가 더 좋은 인터뷰이가 되고 더 좋은 모임 멤버로 거듭나기 위해 잠시 제 시간을 온전히 사용하려는 것이니 제 주위 모든 감사한 분들의 양해를 거듭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요즘 루비콘게임즈를 새로 세우고 소셜 게임을 만들면서 한 가지 깨달은게 있습니다. 다름 아니라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것입니다. 현재 국내 소셜게임 업계 1,2위인 안철수연구소의 사내벤처 고슴도치플러스와 선데이토즈는 요즘 굉장히 좋은 게임들을 적시에 내놓으며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렇게 승승장구하는데에 사람들은 단지 '조금 빨리 시장에 진입했다'거나 그저 '운이 좋았다'고 말하며 자신들도 맘만 먹고 창업을 하면 누구나 고슴도치나 선데이토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고슴도치는 똑똑함과 겸손함을 두루 갖춘 송교석 팀장님의 리더십 아래 2007년부터 OpenID 서비스 IDtail, Digg.com과 유사한 펌핏 등 이렇다 할 성과를 못낸 여러 실패를 거듭한 끝에 2008년 누구보다 먼저 오픈소셜의 가능성을 발견해 현재의 빛을 보게된 것입니다.

선데이토즈 역시 한게임에서 플래시게임 개발팀장으로 숱한 플래시게임을 직접 개발해 온 이정웅 대표님의 전문성과 오랜 이해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모습이 있을 수 있는 것이지요. 그 역시도 이미 2008년부터 facebook에 RPG게임을 만들어 넣을 수 있는 개발툴을 개발했다 참패를 경험했기 때문에 지금의 선데이토즈가 있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요즘 그들이 이미 앞서 걸었던 길을 우직하게 다시 따라서 걸어보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미 작년 10월에 내놓았던 미니게임들을 우리는 이제야 내놓고 있고, 그들이 요즘 선보이고 있는 멋진 시뮬레이션 게임들을 우리는 이제서야 개발하고 있습니다.

제가 경영학에서 배운 이론대로라면 후발주자는 이른바 '차별화 전략'을 써야만 선발주자를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남이 하지 않고 있거나 하지 못할 일들을 해야만 그들을 이길 수 있습니다. 소셜게임을 예로 들면 남이 가지 않는 플랫폼에 들어가거나 남이 만들지 않는 게임을 만들거나 또는 회사의 역량을 개발이 아닌 다른 곳에 쏟는 것들이 차별화의 한 예가 되겠지요. 하지만 저는 루비콘게임즈의 모든 구성원이 완전히 우직한 길을 걷게 하기로 했습니다.

작년에 네이트가 앱스토어를 연다며 위자드웍스를 찾아왔을 때 저는 '남들이 다 소셜 게임을 하니 우리는 소셜 앱을 해야겠다'거나 '남들이 개발에 치중할 때 우리는 마케팅을 더 잘할 방법을 찾자'라며 온갖 잔꾀를 부리다가 후에 크게 후회했습니다. 제가 마케팅에 치중하기 위해 대학생 마케터 수십 명을 뽑아 트레이닝하고 있을 때 고슴도치와 선데이토즈는 우직하게 게임을 개발해 요란한 홍보 없이도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지요.

그래서 제가 깨달은 큰 배움이 바로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것입니다. 요새 보면 무슨 시뮬레이션 게임들 소스를 디컴파일해 내부 구조를 보고 뚝딱 비슷하게 만들어 버리겠다거나, 우린 맘만 먹으면 지금 소셜게임 하는 업체들보다 훨씬 잘할 수 있다거나 하며 당장이라도 고슴도치나 선데이토즈가 될 수 있을 것처럼, 또는 한 술 더 나아가 당장이라도 Zynga나 Playfish가 될 수 있다고 외치는 팀들을 만날 수 있는데 이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였습니다.

세상에 절대로 공짜 점심은 없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요. 그래서 당장 가진 것도 없으면서 내가 그들이 되고자 하면 크게 체합니다. 제가 바로 우직함 말고 다른 방법이 있을까 꾀를 부리다 꼴등을 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그럼에도 다시 한 번 해보겠다고 팀을 꾸려 돌아온 사람이기 때문에 이것 하나만큼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배웠던 것을 우리도 배워야만 하고 당장 우직하게 가는 것이 손해인 것 같아 보여도 길게 보면 지금 한참 뒤에서 손으로 이삭을 주우며 가는게 언젠가 같은 밭에서 농사를 지을 때 우리만의 경쟁력이 될지도 모르는 입니다. 지금의 1,2등이 똑같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같은 깨달음은 사실 지난 수 년간 '팩트보다 포장'을 중시하는 PR을 담당해 온 사장으로서 대단히 큰 생각의 변화입니다. 하지만 올해 초 루비콘을 창업할 때만 해도 '사짜' 냄새 폴폴 풍기며 게임 업계의 겸손한 분들께 의구심을 품게 만들었던 저의 막연한 의지가 그나마 조금은 건전하게 실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변화라고 믿고 싶습니다.

최근에 바로 이런 일련의 깨달음이, 앞서 제가 인터뷰를 끊고 모임을 끊고 강의를 끊어야만 했던 중요한 이유가 된 것입니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탈난다고 저도 좀 우려가 되긴 하지만 적어도 지난 한 두 달이 제겐 전에 없이 스스로 일을 계획하고 실천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는 점에서 계속 해보려고 합니다.

아무리 공짜 점심은 없다지만, 혹시 또 모르지요. 제가 이렇게 온전히 제 시간을 써가며 언젠가 지금보다 가치 있는 사람이 되면 여러분께 공짜 점심을 보다 자주 대접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요. :)

그리고 한 편으론 그동안 잘 알지도 못하면서 배설해 놓은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제 같은 이야기는 가급적 안하려고 해요. 그럼에도 위젯과 스마트폰 앱, 그리고 소셜 게임 등 사업과 기술에 관한 발표나 인터뷰는 물론 계속 할겁니다. 그건 온전한 제 일이잖아요. :)

어쨌든 앞으로 쓸데없는 얘기 다시는 안하겠다는 각오로 그동안 온갖 곳에 배설해 놓은 것들을 아래에 한꺼번에 정리해 놓고 갑니다. 아래 배설물들도 틀어보면 같은 이야기 하고 또 하고 합니다. 이제는 제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야 할 때이지요.

자, 동지들이여 힘냅시다.
언제가 될지 모를 공짜 점심을 위하여!

---

배설물을 들춥니다




- 표철민 올림

Posted by 미스타표